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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글쓴이 : 국은정 작가>
대흥동을 선택한 사람들 part.1 - 미술상점 ‘램프의 진희’ 대표 김진희 씨와의 인터뷰
O. 헨리의「마지막 잎새」의 배경이었던 ‘그리니치빌리지’는 한때 빚쟁이를 피해 하나둘씩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일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기계적인 비교는 어렵겠으나, 대전에도 그런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하고 활보하는 거리가 있다.
대전의 대표적인 번화가였던(?) 구도심인 은행동과 이웃해 있으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대흥동’에는 서예, 미술, 음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갤러리와 대안 공간, 아기자기한 볼거리들로 넘쳐난다. 몇 년 전부터 자생적 문화예술행사로 자리 잡은 ‘대흥독립만세’는 대흥동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하게 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예술가들을 이 허름하고 오래된 동네로 모여들게 만든 것인지 대흥동을 택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대흥동에서 빈티지 소품과 본인이 그린 작품(지인들의 작품 포함)을 전시, 판매하는 7평짜리 공간인 ‘램프의 진희’의 주인장 김진희(39세) 씨다.
그녀는 자신이 전공한 서양화 작업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10여 년 넘게 미뤄오면서 미술학원을 경영했으나 작업에 대한 갈증과 정제된 시간을 벗어나고픈 열망으로 2년 전부터 자신만의 작업공간을 찾아 헤맸다고 한다.
“작년 여름 8월에 이 가게를 얻게 되었어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나름의 보람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던 창의적인 일이 아니었어요. 낮 시간에, 햇볕이 있을 때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일이 다 끝난 저녁에야 에너지를 쓴다는 게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그런 게 아닌데… 낮 시간에도 어떤 때는 조금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그림 그리고 싶고, 작업에 길게 집중하고도 싶고요.
그래서 지금의 가게를 얻자고 생각했지만 당장 딱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2년 전부터 자리를 알아봤었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노은동, 전민동에도 가보고… 그런데 작업하는 사람이 출혈이 너무 심하면서 가게를 얻는다는 게 힘들죠. 대흥동에는 이미 작업하는 분들도 있고, 아는 분들도 계시고, 서실도 많고 하니까 ‘그림을 조금씩 그리면서 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었죠. 신랑이 자리를 지켜주면 제가 집에 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우연찮게 ‘쌍리 갤러리’에서 좋은 전시를 초대해 주셔서 지난 3월에 일주일 동안 전시를 했던 거예요.”
그리니치빌리지가 그랬듯 대흥동을 택한 예술가들은 금전적인 문제에서 비교적 제약이 적은 대흥동의 낡음에 기대어 있었다. 그러나 대흥동을 택한 데에는 금전적 문제 외에도 훨씬 더 매력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가치로는 절대 평가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과 소통’이다.
“낮에 항상 억매여 있던,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이 자유롭지 못한 거잖아요. 어떨 때는 햇볕이 너무 좋고, 어떨 때는 조금 덜 성실하게 살고 싶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일만 할 땐 내 정신에게도 휴식을 안 준 거잖아요. 전 이런 시간을 좋아해요. 좀 비어 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안타까워하는 주위의 시선이 오히려 더 좋아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녀도 누가 손가락질 안하고.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것이 통하는 곳이 대흥동이죠. 계획되고 재단되고 평가되는 게 그동안의 삶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자유롭게 사는지… 그걸 보면 더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 다른 곳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이곳 대흥동에서는 이해가 되는 행위 같다고 할까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고 단국대 서양학과 출신인 그녀가 이곳 대흥동까지 흘러오기까지 과정은 어렵지 않게 어림잡아서 과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가족이나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전업 작가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단어였다고 한다. ‘나도 그런 무능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물론 여기에서 ‘무능’은 예술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자조적인 표현이리라.) 심지어 그녀는 전시를 하는 사람들이 사치스럽다고까지 느낀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도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그런 그녀의 고백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막상 전시 기회가 생겨서 전시를 하게 되니까 ‘아, 내 그림도 이렇게 모양새를 갖추고 보니까 그럴싸하구나. 전시를 봐주러 오는 관객들의 자세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확실히 전시를 하기 전이랑은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소통의 기회도 되었고! 이젠 돈을 저축해서라도 그런 기회를 당당하게 만들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과제를 더불어 안고 있는 대흥동에서 과연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꿈들이 다치지 않고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생뚱맞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사는데, 너는 어떻게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느냐’고 타박해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삶을 살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작업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보니까 많이 흔들리죠. 당장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잖아요. 당장 급한 먹거리도 아니고. 필요하지만 굳이 막아도 살 수 있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저에겐 그렇지가 않았어요,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니까.
대전이 연고지가 아닌데, 여기 와서 좋은 분들 만나서 이런 거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재미있는 제안들을 주시니까 즐거워요. 누구나 좋아하는 일하면서 살고 싶은 거잖아요. 지금도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새로운 변수들도 생기지만, 그 전보단 제 의지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조금 덜 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제가 딱 살고 싶은 삶이예요.”
하루 24시간을 정확하게 이등분하여 선 그어 놓고, 앞에 12시간은 철저히 직업인으로 뒤에 12시간은 철저하게 소설가로 살았던 카프카. 결국 하루를 이틀처럼 살았던 카프카도 그의 자전적 소설 ‘변신’에서와 같이 과도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남들보다 훨씬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모든 예술가가 그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어떤 것을 선택해도 창작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가시밭임에 틀림없다.
미술학원을 경영할 때와 작품을 팔아서 얻는 지금의 수익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차이가 날 게 뻔했다. 매달 다르지만 월세 30만원을 충당하는 정도란다.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의 한계가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그 누구보다 당당해 보였다. 오히려 창작활동이 너무 늦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닿아왔다.
어떻게든 대중과 소통해 보고 싶은 그녀는 막상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판매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작품이지만 일반인들이 구매하기에 부담 없는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너무 대중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술적이지도 않은 그 어디쯤에서 소장의 가치가 있는 그림들을 진열하게 된 것이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게 아니라 화가가 직접 그린 것, 쉬운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쉽게 그릴 수 있는 게 아닌 것들로. 물론 그녀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정점에 다다르기 위해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장사꾼이 아니라 작가가 아닌가!
끝으로 대흥동을 둘러싼 대전시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소견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녀 역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6개월 넘게 대흥동에서 작업공간을 가지고 활동하는 창작자들에게 일 년에 80만원 씩 2년 정도 창작지원금을 준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신청을 해둔 상태예요.
행정을 하는 분들도 공연이나 문화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정해진 예산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그만큼 어려운 일이겠죠. 당장 나에게 이걸 해달라는 것은 아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회들이 많아져야 가능성도 늘어나는 거잖아요. 그래야 창작자들이 더 많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요즘 대흥동은 도로의 높낮이를 맞추겠다고 거리에 나무를 모두 빼갔는데, 우리는 당장 걱정 돼요. 개발이 되면 임대료를 더 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까요. 개발만 되면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는 근시안이 아니라 지금 대흥동이 가진 장점들을 잘 살려서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대흥동이라는 공간이 지닌 매력과 가치를 발견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지금은 서서히, 미지근하게 발전해온 지역의 문화예술이 훨씬 더 강인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시기가 아닐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의 거름이 주어지면 척박했던 황무지도 어느덧 옥토가 될 테니까.
이츠대전TV '대전원도심이야기' 취재블로거 국은정 작가
원본 콘텐츠 : 대전시인터넷방송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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